올해 2월 중순, 여느 날과 같이 SW중심대학사업단 공지사항을 열어보던 차에 ICCAS 2024 프로그램 참여 신청 글을 발견했습니다. 영국에서 발표하고, 그 전에 집중 교육, 멘토링 등을 제공하면서 디지털 치료제로서의 기능성 게임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라는 말을 듣고 망설였습니다. 저는 의료IT공학과도 아니고, 게임 개발에는 줄곧 관심 없었으며, AI의 A도 모르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학교에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 중 그나마 유사한 성격인 K-SW 스퀘어 프로그램은 제가 이공계 국가우수장학금을 받게 되면 참여할 수 없는 것이라서, 주변으로부터 조언을 듣고 안 될 거라 생각하면서도 일단 신청해보기로 했습니다. 21년도에 진행했던 국민대 UCI-GREAT 프로그램처럼 이 프로그램에 내년에도 저희 학교가 참여할 거란 보장이 없을 뿐더러, 비록 학교 출발 기준으로 산정되기는 하지만 각종 비용을 지원해주시기로 하여 부담도 덜 했기 때문입니다.[각주:1]

방학 중이라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많았던 탓인지, 게임에 관심있는 동기에게 이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려던 중 다시 들어가보니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마감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 영어 면접이 잡혀서 당황했고, 옆에 있었던 다른 학생이 훨씬 영어를 유창하게 하였기에 떨어질 거라 직감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도 합격했고, 교수님과의 2차 면접을 위해 급히 기차를 잡아 학교로 다녀와야 했습니다.

면접장에는 저희 과 교수님 두 분이 계셨습니다. 교수님께서 하시는 질문에 면접자 모두 저를 필두로 동문서답을 했기 때문에, 제가 최종 선발된 까닭에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요인도 있지 않았을까 의심했으나 나중에 상담 때 여쭤보니 알고리즘에 대해서 물어봤을 때 다른 사람 대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같이 선발된 다른 한 분은 같은 동아리에 계셨던 분으로 이전에 K-SW 스퀘어 경험도 갖고 계시고 과도 관련 학과여서 충분히 선발될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거나 저희 학교에서는 단 두 명만이 선발되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밖에 경운대, 동서대, 부산대, 인제대, 인하대 및 주관 기관인 충북대 학생들이 함께 모여 3월 온라인 OT를 듣고 4월이 되자 본격적인 프로그램 시작을 위해 청주 글로스터 호텔에 모였습니다.

본 글은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지난 8월에 작성하려던 글을 되살려 하나씩 회고해봅니다.
  • 1편 : 선발, 그리고 1차 집중교육 (여기)
  • 2편 : 벼락치기로 시작하는 구현과 디자인
  • 3편 : 기사회생의 시간: 2차 집중교육 1주차
  • 4편 : 영국에서의 끝맺음, 그리고 다시 청주로

4월, 청주 글로스터 호텔에서

ICCAS 프로그램은 동명의 학회와 혼동이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해외 한인 과학자 협회가 주최하는 EKC 컨퍼런스와 연계된 프로그램입니다. 작년에도 진행되었지만 1차 집중 교육 기간은 이번보다 하루 짧았다고 하는데, 학생들이 많이 고생하는 탓에 조금 빡빡하지만 하루를 더 늘려 진행하게 되었다고 말씀주셨습니다. 후술하겠지만 그렇게 하루가 늘어난 2박 3일 일정조차 그리 넉넉한 일정은 아니어서, 부산대 등 멀리서 오는 학생들의 어려움 등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결정한 이유가 이해되는 일정이었습니다.

마침 저는 공교롭게도 수업이 없는 날이라, 아침 일찍 학교 기숙사에서 채비를 하고 청주로 향하기 위해 천안 터미널로 향헀습니다. 출발 전 충북대학교 SW중심대학사업단에서 1차 집중교육 기간 식사 메뉴에 대한 설문을 받았는데, 이틀차 저녁으로 냉모밀을 선택했던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천안 터미널 야우리 푸드코트에서 냉모밀을 선택하는 어리석은 실수를 하기도 했어요.

김가루가 올라간 냉모밀. 밑반찬으로 깍두기와 단무지가 있다.
여러분은 이런 어리석은 실수를 하지 마세요.

당일에는 한창 선거 기간이라 식사를 마치자마자 일찌감치 출발, 청주의 한 투표소에서 유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호텔로 향했습니다.

첫날에는 2인 1실로 구성된 호텔 방 배정과 아이스 브레이킹을 겸한 팀명 정하기, 그리고 디지털 치료제를 만들 질병 선정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방 배정을 받아 짐을 풀고 내려와서 저희 조 책상에 앉아 팀원을 기다렸습니다.

ICCAS 2024 집중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안내해주시고 있는 장면

조는 사전에 교수님께서 만들어주신대로 구성되어서, 대체로 충북대 1명, 기타 다른 대학 3명이거나 충북대 2명에 타 대학 2명 조로 구성되었습니다. 저희 조(7조)와 바로 다음 조(8조)에 각각 저희 학교 인원이 배치된 것으로 보아 타 대학도 대학별로 나눠 배치하고자 노력하시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어쨌든 저희 조는 충북대 1, 부산대 1, 인제대 1, 순천향대 1 이렇게 모두가 다른 대학 출신이었음에도 취미, 감성, 학년 같은 부분에서 서로 부분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처음에는 다소 어색했지만 이후 과정에서 대체로 순조로운 편이었습니다.

팀명을 정하는 과정에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결론적으로 디지털 치료제를 만드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착안해 '병실' 키워드를, 그리고 영국에서 최종 발표가 있다는 점에서 '티타임' 키워드가 나왔고, 처음에는 '병실에서의 티타임' 같은 이름이었고 교수님께서도 마음에 들어 하셨으나, 너무 길다는 이유로 조금 더 줄여서 '티타임 환우회'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각주:2]

금요일 저녁 식사로 먹었던 불고기 비빔밥.

MORE MORE PROOF!

선례인 ICCAS 2023에서 선정한 질병은 선택하고 싶지 않았고, 다른 조와도 겹치지 않길 원했기에 첫째 날 과제였던 디지털 치료제 질병 선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반대로 무엇을 구현할지를 먼저 정하고 이 구현체가 어떤 도움을 줄지 생각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씀하셨고, 결국 이 조언이 저희 주제 선정의 열쇠가 되었습니다.

초반에는 특정한 질병을 토대로 개선방안을 제시해보기도 했으나 의학적인 근거가 아직 정립되지 못했고, 일부 완화 가능성이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시중에 비슷한 앱이 많다는 점에서 기각되었습니다. 다른 질병도 비슷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충북대 팀원 분의 구현 아이디어인 '리듬게임'을 바탕으로 손 기능 저하라는 키워드를 도출하였고, 손 기능 저하의 원인으로 뇌졸중 편마비를 발견하여 이를 중심으로 토요일 오전 발표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호텔 조식을 이용할 수 있어서, 아침으로 카프리제 샐러드와 맛감자, 스크램블 에그 등을 먹었습니다. 속탈의 원인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구현 아이디어를 먼저 고른 이상 끼워넣기가 되기 쉽습니다. 잘 되었다면 좋은 결과였겠으나 구현 아이디어에 열중하느라 근거 자료를 찾고 명확히 인지할 시간이 부족하였고 이튿날인 토요일 발표에서 찾은 근거를 제대로 소개하지 못해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기존 자료에 대한 명확한 정리는 물론이고 리듬게임이라는 구현 방식이 불러온 환자의 사용 가능 여부 문제도 타 대학 석사학위논문 등 다양한 논문을 추가로 검토하여 해당 연구에 달린 몇 가지 조건을 본 프로젝트에도 부가하는 방향으로 구현 난이도를 완화하였습니다. 평소에는 점심부터 새벽까지 논문을 들여다보는 경험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심정적으로는 머리가 빠지는 줄 알았어요. 어떤 논문이 신빙성이 높은지에 대해서도 조언을 들을 수 있어서 유익했습니다만, 한편으로 저희 팀을 비롯한 몇몇 팀이 너무 늦게까지 완성하지 못해서 교수님들께서 걱정하시기도 하셨습니다.

토요일 점심으로 먹은 쉬림프 롤과 우동

 

토요일 저녁이었던 냉모밀과 돈까스. 그래도 이 선택은 후회가 없었습니다.

시나리오𝄋쇼타임

학술적인 근거가 물론 핵심이지만 일요일에 발표해야 하는 부분 중 하나는 시나리오였습니다. 발표 자료의 각 부분을 나누면서 적당한 분업이 필요했기 때문에 저는 초반엔 디자인을 하려고 했으나, 제가 원하는대로 디자인에 들어갔다간 새벽은 커녕 아침에도 완성하지 못할 것이 훤했기 때문에 대략적인 와이어 프레임 제작과 UI 배치는 팀장님이 하시고 저는 그 배치를 기반으로 시나리오를 작성했습니다. 그렇게 교과서에 나올 법한 길동 어르신은 이후 다음 발표와 페르소나 정립 과제에서도 계속 함께하게 됩니다.

일요일 아침 발표에서는 제한된 시간으로 인해 급한 마음이 강했고, 결과 제 파트에서 마치 랩을 하듯 시나리오를 소개하는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당시에는 구현 계획이 비교적 간단한 편이고 발표 자료를 미리 받아보신 교수님께서도 리듬게임이라는 개념을 인지하고 계셔서 심사에 큰 어려움은 없으셨던 듯하나, 이후 다른 발표에서는 명확한 단점이 되었기에 최종 발표까지 점진적으로 고쳐야만 했습니다.

다른 팀과 비교했을 때 저희 팀은 디자인이 좋진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팀은 미리캔버스나 유료 프레젠테이션 템플릿을 쓰고 애플리케이션 디자인에도 신경을 쓴 모습이 보였으나, 저희는 Google 슬라이드에 있는 기본 디자인을 사용하고 글꼴만 조정한데다 UI 디자인은 사실상 디자인이라기보단 배치만 한 수준으로 나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아침에 지적받은 사항이 워낙 중대하다 보니 근거를 찾고 저희 팀의 구현 방식에 맞게 조정하는 과정이 상당히 오래 걸렸고, 탄탄한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시나리오나 와이어 프레임 제작을 시작할 수 없기에 줄줄이 지연된 까닭이 컸습니다. 대신 시나리오는 와이어 프레임의 단순 나열에 그치지 않도록 비록 성함이 성의가 없긴 했으나 조금 고민해서 작성했습니다. 나중에 '시나리오를 쓰라는 부분이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니었나?'라는 혼란을 불러오기도 했지만요.

시나리오에 포함할 수 밖에 없기에 임시로 게임 이름을 정하는 과정에서도 몇 가지 안이 오가다 결정하지 못하고 hand game이라는 누가봐도 가칭인 이름을 썼는데, 이대로 굳어져서 ICCAS 프로그램이 끝나는 날까지 hand game이라는 이름을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앱 아이콘까지 초기에 AI가 그려준 디자인을 그대로 쓰진 않은 것이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ICCAS 2024 프로그램이 끝나는 날까지 함께 해주신 홍길동 어르신과 가칭이 되지 못한 Hand Game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고 시나리오는 괜찮았다는 평가 속에서도 ChatGPT API를 이용한 보고서 조언 같은 부분에서 AI를 억지로 끼워넣은 것 같다는 지적을 받았고, 당초 저희가 자료를 찾아볼 때는 인지하고 있었으나 발표에는 포함하지 못하면서 음악 저작권, 실제 활용 가능 여부와 같은 부분에서 추가로 피드백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점심은 사전에 안내된 바가 없었기에 당연히 각자 먹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으나 교수님께서 버거킹 와퍼를 준비해주셔서 팀원들과 함께 와퍼를 먹으며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교수님께서 멀리서 온 학생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일찍 끝내주셨지만 혹시 모를 지연을 고려해 한참 늦게 잡은 버스 시간 덕분에 조금 더 청주를 즐기다 학교로 복귀했습니다.

지나가던 초등학교에 흐드러 펴 있던 벚꽃
청주의 상징 직지 동상

마치며

그간에는 해커톤에서 길어도 5시간 정도 진행했던 브레인 스토밍이 가장 긴 주제 선정 경험이었는데, 팀 이름 짓기부터 아이디어 선정까지 3일을 잡는다는 것이 경험 전까지는 선뜻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경험해보니 왜 작년의 이틀이 모자랐다고 하셨는지 잘 알 수 있었고 한편으로 식사, 숙소, 피드백 등 여러 부분에서 교수님과 관계자 분들께서 학생들을 배려해주시는 마음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다들 늘어난 시간만큼 더 공을 들였지만요. 시작이 순조로워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스스로를 향한 걱정에 대해서도 덜었던 것 같습니다.

  1. 실제로 2025년도에도 충북대에서는 ICCAS 2025 프로그램을 진행하지만, 저희 학교는 참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K-SW 스퀘어 프로그램도 중단된 마당에 좋은 프로그램을 경험해도 지원이 끊겨서 쉬이 추천해주기 어려운 만큼 부디 해외 교육 프로그램에 연속성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본문으로]
  2. 그리고 바로 그 다음해 팀명의 유래가 된 작품이 다시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세상에. 아참, 결코 재개봉때문에 생각나서 후기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으로]